알쓸 사자성어 - 괄목상대, 새옹지마, 오리무중, 조삼모사 :: Korean Tip
  • 2023. 8. 28.

    by. 마인드-파워

    사자성어를 알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사자성어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풍부한 의미와 지혜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자기표현 능력과 교양을 향상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맞춤 표현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사자성어의 배경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더 나은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며, 바른 인성을 키우는 데에 좋습니다. 

    이처럼 사자성어를 알고 있으면 언어, 문화 그리고 지식 측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목차

    • 괄목상대
    • 새옹지마
    • 오리무중
    • 조삼모사

     

     

    괄목상대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배송지(裴松之)가 붙인 주(注)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吳) 나라 왕 손권(孫權)이 부하 장수 여몽(呂蒙)이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없는 것을 염려하였다. 국가의 큰 일을 맡으려면 글을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왕의 당부에 따라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다.

    한편 평소 여몽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경시했던 재상 노숙(魯肅)은 그가 전과 달리 인상이 온화해지고 학식이 풍부해졌음에 깜짝 놀랐다. 이에 여몽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이후 여몽은 노숙이 죽은 뒤 손권을 보좌하여 국력을 키우는데 힘썼다.

    촉(蜀) 나라 관우(關羽)를 사로잡는 등 갖가지 큰 공을 세워 오나라 백성에게 명장으로 추앙받았다. 이렇게 한동안 못 본 사이에 학문이나 인품, 그 밖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늚을 이르는 말로, 괄목상관(刮目相觀), 괄목상간(刮目相看)이라고도 쓴다.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성장하고 발전을 이루어 새롭게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사용한다. 한편 이 고사에서 예전의 여몽처럼 무예만 뛰어나고 학식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오하아몽(吳下阿蒙)’이라고 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새옹지마

    중국 전한 시대의 서책 《회남자》의 내용 중 『인간훈』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직역하면 '변방 노인의 말(馬)'이란 뜻입니다.  풀이하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변수가 많으므로 예측이나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보통 '인생사 새옹지마', '인생만사 새옹지마'의 형태로 쓰인다. 인생의 일은 변방 노인의 말과 같다는 뜻입니다. 유래는 아래와 같습니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던 북쪽 변방에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어느 날에 도망가자 사람들은 "말이 도망가서 어쩝니까? 정말 안되셨습니다." 하고 위로했더니 이 노인은 오히려 "글쎄요, 이 일이 복이 될지 어찌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도망갔던 말이 많은 야생마들을 이끌고 노인에게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부자가 되셨구려! 축하합니다!"라고 환호했지만, 이 노인은 또 "글쎄요, 이 일이 재앙이 될지도 모르지요."라며 기뻐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 노인의 아들이 그 말들 가운데에서 좋은 말 하나를 골라 타고 다녔는데,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고 절름발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드님이 다리를 다쳐서 저 지경이 되었으니 어떡합니까? 정말 안 됐습니다." 하고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글쎄요. 이게 다시 복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라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얼마 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많은 남자들이 징집되어 대부분 전장에서 전사하였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 역시 상당수가 장애를 안고 돌아왔다.

    이 때문에 마을 내에선 멀쩡한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마을에서는 전사 군인 유족들의 울부짖음과 살아남았어도 장애를 입은 상이군인들의 한숨, 그리고 걱정하는 가족들의 한숨이 뒤섞였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서 징집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노인이 왜 그리 모든 일에 덤덤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출전(出典) 나중에 송말원초의 승려 회기원희(晦機元熙) 선사(禪師)가 지은 시 <기경산허곡릉화상(寄徑山虛谷陵和尙)>의 '인간만사새옹마(人間萬事塞翁馬) 추침헌중청우면(推枕軒中聽雨眠)'이라는 구절에서 '새옹지마'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화와 복은 알 수 없으니 매사에 일희일비(작은 일 하나에 하나하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아래의 바로가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 새옹지마 바로가기

     

     

     

    오리무중

    깊은 안갯속에 들어서게 되면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길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하여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환관과 황실의 외척이 세도를 부리던 후한 중엽에 이름난 학자이자 시중의 고문관을 지낸 장패(張覇)는 그의 명성을 듣고 사귀기를 원하는 권문세가의 요청을 마다하고 고고하게 살아갔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완고함을 비웃었고, 얼마 후 그는 70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아들 장해 역시 《춘추》 《고문상서》 등에 정통한 학자여서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고 이름 있는 학자들이 모두 그의 문을 두드렸으며, 세도가들도 그와 가까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때 묻은 자들과 섞이기를 싫어하여 시골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조정에서는 그를 아껴 여러 차례 예를 다하여 맞이하려 하였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장해는 학문만 잘한 것이 아니라, 도술에도 능하여 곧잘 5리에 걸쳐 안개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당시 관서에 살던 배우(裴優)라는 사람도 도술로 3리에 걸쳐 안개를 만들 수 있었지만, 오리 안개를 배우고자 장해를 찾았으나, 장해는 오리 안개에 자취를 감추고 만나주지 않았다.

    이리하여 '오리무중'이란 말이 생겼다. 그 후 관서 사람 배우가 안개를 일으켜 나쁜 짓을 저질렀다가 잡히자 장해에게서 그 도술을 배웠다고 했으므로 장해는 억울하게 2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옥중에서 그는 경적(經籍)을 읽고 상서의 주를 썼다. 뒷날 사실 무근함이 판명되어 풀려났고, 환제(桓帝) 때에 다시 초빙되었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고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조삼모사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 송나라의 저공이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자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고 말을 바꾼 것에서 유래했다.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고사성어 (한국사 주요 사건으로 풀어낸 고사성어, 2013. 07. 28., 이이화, 양송이)